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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싫다던 재개발조합장님의 깜짝 선물

사단법인 서대문구길고양이동행본부 2023.07.13 08:49 조회 25

고양이 싫다던 재개발조합장님의 깜짝 선물

사진 서대문구..
 








































[노트펫] 동네 고양이들을 못마땅해 하던 무뚝뚝 재개발조합장님의 깜짝 배려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 문화공원 바로 옆에서는 가림막을 둘러치고 한창 터파기 공사가 진행중이다.

 

영천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현장이다. 과거 영천시장 뒷골목으로 불렸던 이 곳은 공사가 끝나면 지하 5층~지상 23층 짜리 건물 두 동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주상복합 아파트로 바뀌게 된다.

 

공사 현장을 둘러친 가림막.
서대문 영천 반도유보라 공사 현장을 둘러친 가림막.

 





















가림막을 따라 가다보면 눈에 띄는 시설이 있다. 가림막 곳곳에 길고양이용 급식소와 함께 고양이 생태통로가 설치돼있다.

 

몇 년 전부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고양이 생태통로가 설치되고 있다. 가림막을 쳤어도 원래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고 어떻게든 공사장에 들어가는 고양이가 다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게 위해서다.

 

하지만 생태통로는 많게는 수백마리가 살던 지역을 재개발하는 대규모 건설 현장에서나 볼 수 있다. 건물 두 동에 불과한 영천 재개발 현장에 생태통로가 설치된 것은 무뚝뚝한 재개발조합장님의 역할이 컸단다.

 

작년 봄 쯤 서대문구 길고양이단체 서대문구길고양이동행본부(이하 서동행)에 구청에서 요청이 하나 들어왔다. 이주와 철거가 시작되는 현장에서 고양이 돌보미들과 재개발조합측이 고양이 밥주는 것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면서 중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주 막바지 신경이 최고조로 예민해져있던 때 조합 측은 철거가 진행되면서 위험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있었고, 돌보미들은 고양이들을 죽게 내버려둘 순 없다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고 있었다.

 

사진 서대문구..
영천 재개발 현장 인근에서 구내염으로 구조돼 보호받고 있는 고양이. 사진 서대문구길고양이동행본부(이하)  

 






































영천 재개발 지역은 영천시장과 독립문 문화공원이 있어 동네 고양이가 수십마리에 달했다. 그대로 뒀다가는 사고를 당하거나 굶어죽는 고양이가 속출할 판이어서 오랜 기간 고양이들을 돌봐온 이들도 물러설 수 없었다. 시장 상인들 일부도 고양이들을 살려야 한다고 나섰고 어떤 돌보미는 아예 쉼터를 만들어 살던 고양이들을 거뒀다.

 

서동행의 양측을 오가는 중재 아래 밥을 주고 고양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특정한 기간을 잡아 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문제는 밤에 다시 들어가거나 혹시 나오지 않고 숨어버렸을 고양이들이었다. 생태통로가 필요하다는게 돌보미들의 주장이었다.

 

사진 서대문구..
임시 가림막 설치 당시의 고양이 생태통로. 

 
























































재개발조합 측에서는 임시 가림막은 어차피 철거할 것이니 굳이 비용을 들여서 할 필요가 없고, 두 달 뒤 정식 가림막을 칠 때에 생태통로를 만들어주겠다며 그만 물러서라고 했다. 이에 돌보미 측은 임시 가림막을 치는 기간에도 생태통로가 필요하다며 자비로 설치하겠다고 했고, 조합 측에선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조은영 서동행 대표는 "재개발조합장님이 고양이에게 밥주는 것을 싫어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던 탓에 고양이 돌보미들은 조합 측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며 "고양이를 두고, '그깟 고양이'와 '죽을 위기에 처한 이웃'이라는 인식이 대립하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두 달이 지나 진짜 가림막이 설치된 지난달. 고양이 돌보미들 사이에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한 회원이 공사 현장을 찾았다가 곳곳에 뚫려 있는 생태통로를 발견한 것이었다.

 

사진 서대문구..
고양이 돌보미는 재개발조합과 시공사가 설치한 생태통로와 급식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림막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말이 없어서 어물쩡 넘어갈 것으로 봤는데 정말 약속대로 생태통로가 뚫려 있었다. 당초 네 곳에 뚫겠다고 했던 것을 한 곳은 사고 위험 때문에 필요없다고 한 의견도 그대로 반영해 세 곳에 통로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또 임시 가림막 때 생태통로는 그저 철판을 둥그렇게 잘라 끝이 날카로웠지만 이번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고양이 털이 걸리거나 긁히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감처리까지 돼있었다. 

 

조 대표는 "재개발조합측에서 별다른 말이 없었기 때문에 생태통로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해야 하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며 "회원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생태통로가 맞는지 수 차례에 걸쳐 확인했다"고 웃었다.

 

사진 서대문구..
생태통로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은 사진. 

 





















생태통로에는 아무런 표지판이 없었는데 서동행은 역시 조합 측의 허락을 받고 '고양이 생태통로'라는 표지판을 세웠다. 그리고 예상치 않게 고양이 급식소까지 설치됐다. 시공사 측 직원이 사비를 들여서 힘을 보탠 것이었다. 그렇게 현장에는 고양이 급식소와 함께 생태통로가 나란히 들어서게 됐다.

 

조 대표는 "최근 표지판 설치차 만난 재개발조합장님은 '제가 뭐 고양이를 예뻐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며 "고양이들을 두고 말이 통하지 않는 분인 줄 알았던 분이 고양이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해주신 것같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진 서대문구..
독립문 문화공원에 설치된 서대문구 공식 급식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