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 동물 학대가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는 한편, 동물을 지키려는 따뜻한 마음이 사회 곳곳 눈에 띄기도 한다. 서대문구에서는 '가디언(guardian)'들이 길고양이를 지킨다. 가디언은 우리말로 수호자라는 뜻으로, 서대문구길고양이동행본부(서동행)에서는 길고양이의 먹이와 보금자리를 살피고 챙기는 이들을 가디언이라고 부른다.
서동행의 조은영 대표, 송미경(관현·89졸) 부대표는 각각 서대문구에서 약 20년, 30년 이상 길고양이들을 돌봐온 가디언들이다. 이들은 약 10년 전 처음 만나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다 2017년 서동행을 결성했다. 본지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12일 북아현동에 있는 서대문구길동물(서길동)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는 4층, 계단을 앞서 오르는 조 대표의 양손에 들린 이동장 안의 고양이들이 자세를 바꾸며 동그란 눈으로 뒤따르는 사람을 바라봤다. 센터에 도착하자 똑 닮은 고양이 두 마리가 이동장을 빠져나와 센터 여기저기를 거닐었다.
고양이들의 이름은 아톰과 토미, 7개월 정도 된 새끼 고양이들로 서동행에서 4월29일 구조했다. 이들은 ◆애니멀호더의 집에서 태어났다. 서동행은 눈도 못 뜨고 숨만 겨우 쉬는 아이들을 죽기 직전 겨우 구조했다. 호더는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들을 살리려 하지 않았고, 이들은 설득 끝에 세 마리의 고양이를 구조할 수 있었다. 구조 후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고양이들은 현재 조 대표의 집과 센터를 오가며 생활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소유권은 여전히 호더에게 있다. 언제든 호더가 고양이들을 데려가겠다고 하면 고양이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돌아가면 방치당할 게 뻔해도, 이를 막을 제도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자주 마주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히 고양이를 위해 일한다.
조 대표와 송 부대표는 오래전부터 구조 활동을 해왔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절한 조치를 통해 길고양이가 원래 지내던 곳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하려 노력했지만, 구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힘닿는 데까지 구조해도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는 계속 나타났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들은 2017년 길고양이 인식 개선 활동을 지속하기 서동행을 설립했다.
단체를 결성한 후, 그들은 구청과 여러 번 협의를 거쳐 다양한 활동을 추진했다. 기존에 활동가 사비로 감당하던 의료비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서동행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시 항생제를 함께 주사해 길에서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부터 고양이를 보호한다. 항생제 비용은 구청이 전액 지원한다. 이는 서대문구가 전국 최초로, 2020년 8월 처음 시행한 제도다. 2020년에는 전문가를 초청해 동물정책 토론회와 강연회를 개최했고, 2021년에는 4회에 걸쳐 가디언 교육 강의를 무료로 진행하기도 했다.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단체는 할 수 있다. 쉽게 경시되는 개인의 요구보다 단체 차원의 요구는 훨씬 큰 힘을 발휘했다. 마찬가지로 단체에 없는 힘이 지자체에는 있다. 그들은 2018년부터 서대문구청 직인이 찍힌 인식 개선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송 부대표는 "구청에서 직접 배포하지 않아도, 구청 날인이 찍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다르게 인식한다"며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지자체의 협조를 강조했다.
서길동 센터 오픈 준비 과정에서도 구청 봉사 공무원들이 센터 단장을 도왔다. 서길동 센터는 인식 개선과 길고양이 입양 활동을 목적으로 서동행에서 7월17일 개소한 고양이 북카페다. 센터에서는 고양이 입양 상담이 가능하고, 차를 마시며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센터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상주하고, 직원들과 함께 출퇴근하는 고양이들도 여럿 있다. 상주하는 고양이 중 ‘동궁’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8월 동물구조협회에서 안락사 직전 구조됐다. 동궁이는 아직 사람을 낯설어하지만 해가 따스하게 드는 창틀 자리를 좋아한다. 송 부대표는 동궁이가 누워있는 창틀 옆에 앉아 말했다.
“공간에서 무엇을 하든 편안하게 찾아주세요. 센터가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접근 장벽을 낮추는 곳으로 기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17일 서동행은 서길동 센터에서 “길고양이 동행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축제를 열었다. 센터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낮춰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허물기 위함이었다. 축제에는 고양이 입양에 관심 있는 지역 주민들과 고양이들을 돌봐주는 동물 병원 의사, 구청 관계자와 정치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방문했다.
모든 길고양이를 구조해 집고양이로 만들 수는 없기에,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서동행의 지론이다. 그들은 ‘위풍당당 급식소’와 화장실, 길고양이 집을 서대문구 곳곳에 두어 고양이들이 길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 ‘위풍당당’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시설들은 눈에 잘 띄는 노란색과 연두색인데다 한 사람이 들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일반적으로 길고양이 밥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곤 하잖아요, 그게 고양이들을 숨어서 밥 먹어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 같았어요.” 조 대표는 이 시선을 사로잡는 시설들에 대해 길고양이들을 “음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사는 존재로 인식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급식소와 화장실은 구청,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친 장소에 설치됐다. 시설에는 서동행과 서대문구의 로고가 함께 새겨져 있다. 구청에서 인가한 사안임을 나타내 시설 훼손을 막기 위함이다. 현재 서대문구 내에는 길고양이를 위한 29개의 급식소와 5개의 화장실, 그리고 8개의 고양이 집이 마련돼있다.
현재 몇몇 급식소 앞에는 길고양이 급식소의 필요와 장점에 관해 설명하는 나무 표지판이 함께 세워져 있다. 조 대표는 안내판을 확대 설치할 계획을 밝히며 “여유가 된다면 시설 주변에 감시카메라도 설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길고양이들이 지내기 좋은 환경인 만큼 혐오 범죄에 노출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서대문구에서도 학대로 인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길고양이의 사체가 종종 발견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21년 기준 1072건으로, 하루에 동물 학대 사건이 약 3건씩 확인되는 꼴이다. 그중에서도 보호자나 보금자리가 없는 길고양이는 혐오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최근 포항에서는 2020년부터 길고양이 약 10마리를 잔인하게 죽인 30대 남성이 검거되기도 했다.
동물 학대는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수사와 처벌이 어렵다. 조 대표는 학대받은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 사체를 발견했을 때엔 “꼭 사진을 찍고, 경찰이나 구청이 아닌 동물보호단체로 연락할 것”을 당부했다. 경찰이나 구청은 보통 길에서 발견된 동물의 사체를 소각하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에 연락해야 사체를 부검해 사인을 밝힐 수 있고, 경찰에 동물 학대 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서동행 카페 회원 수는 약 1500명, 서동행의 구성원들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조 대표는 “동물 활동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흐려지면 좋겠다”며 구분짓지 않아도, 누구도 길동물을 배척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표했다. 송 부대표도 “예전에는 도둑고양이라고 불리던 친구들이 이제는 길고양이라고 불린다”며 계속해서 공존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학생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기를 부탁합니다.”
◆애니멀호더: 본인이 감당 가능한 수보다 많은 동물을 키우며,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와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